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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엄마홈피 보며 엉엉 울었어요"

[글짓기&포스터 공모전, 글짓기 부문 고등부 대상]

양현서 기자  |  2007.12.06 16:28
[글짓기&포스터 공모전, 글짓기 부문 고등부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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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 때 10대 소년들의 심장을 강타했던 국민가수 GOD의 노래가사 중 일부다. 걱정하는 마음, 위하는 마음, 안쓰러운 마음을 모두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어머니 보다는 아마도 안으로 삭이고 묵혀두는 어머니들이 더 많지 않을까.

양현서(전남 곡성고)양이 체험한 인터넷은 모성의 세상이다. 집을 떠나 기숙사 고등학교로 입학하면서 성적으로 서열이 갈리는 학내 분위기가 괴로웠다. 스스로 지원핸 간 곳이라 불평은 하지 못하고 안으로만 곪아가고 있었다.

"미니 홈페이지가 유일한 배출구였어요. 일기장에 소회를 적듯 기록했는데, 엄마한테 지나가는 말로 했더니 엄마도 미니 홈페이지를 만들고 1촌 신청을 했더라고요."

넷맹인 어머니의 계정을 점검해 주기 위해 들어간 홈페이지에는 방황하는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이 적혀있었다.

"원래 문학을 좋아하시는데, 시처럼 표현해 놓으셨더라고요. 이제 고3이 되는데, 믿고 지켜봐주는 엄마가 고마워서라도 학교생활 잘 해야죠. 나중에 시나리오창작과 들어가서 영화감독이 됐으면 해요."



나는 현재 남들과 별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바로 작년인 중3이 고1이 되던 2006년. 뭐가 그리도 자신감에 차 있었는지 나 스스로가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곁을 떠나 생활해야만 하는 기숙학교에 진학하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그 어린 마음에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 독립(?)한 상황에서 내 꿈을 향해 뭔가를 스스로 한다는 것이 멋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았던 여수보다는 한참 시골인 곡성에 위치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한적한 곳도 있구나 싶었고, 나의 꿈은 착오 없이 척척 진행될 것 만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대학 입시의 길은 너무나도 살벌했다. 항상 같이 수다 떨고, 밥도 같이 먹었던 친구들이 시험만 다가오면 서로를 경계하기에 급급했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들도 결국 객관적인 판단에 있어서는 성적으로만 판단하셨다.

마치 내가 학교의 진학 실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 정도로 밖에 취급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나의 길을 이기적으로 묵묵히 걸어가기엔, 나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나에게는 누군가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나의 고민을 말하면서도 시험기간이 되면 따지게 되는 우열감이나 열등감이 싫었고,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도 결국에는 성적으로 판단되는 게 싫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아무 목적 없이, 내 곁에서 있어줬던 친구들과 부모님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2주일에 한 번 집에 내려가는 것만으로는 나의 고독함과 절망감을 달랠 수 없었다. 나는 점점 왜 그런 학교에 진학하도록 내버려두었냐며 엄마를 많이 원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학교였기에 누군가를 크게 탓하지도 못하고 나의 방황은 속으로만 곪아갔다.

그 때마다 나는 답답한 심정을 내 미니홈피에 써놓고는 했다. 내 미니홈피에 일기를 써 놓는 것, 그리고 옛날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파도타기 하면서 소식을 접하고 가끔은 대화도 나누는 것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되었기 때문에 학교생활이 점점 고달파질 때, 특히 시험기간이 다가올 때면 나는 미니홈피에 글을 남기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에게 요즘에는 일기를 미니홈피에 쓴다는 말을 얼핏 했는데 아마도 엄마는 그 시기쯤부터 컴퓨터를 배운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일기를 쓰기위해 로그인을 하자 익숙한 팝업창 속의 생소한 두 글자를 보고는, 헛것을 본 듯 내 두 눈을 비볐다. 그것은 정말 놀랍게도 엄마의 일촌 신청이었다. 처음에 나는 어떻게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엄마가 싸이에 가입을 하고 내게 일촌 신청까지 해 놓았는지 의문이 들어, 혹시 뉴스에서만 보던 정보 도용 뭐 그런 종류의 범죄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다.

엄마에게서 엄마가 내게 일촌신청을 한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서, 나는 엄마가 미니홈피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내게 친근하고자 하는 엄마가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일촌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나의 미니홈피 콘셉트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절망감 이였고, 홈피의 메인조차 어떻게 바꾸는지 모르는 엄마의 미니홈피 콘셉트는 두세 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꾸며지지 않는 ‘無’였다.

주말에 집에 갈 때마다 엄마가 어떻게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방법과 사진을 올리는 방법을 묻곤 했지만, 클릭이라는 용어도 모르는 엄마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다가는 나의 주말이 통째로 날아갈 것을 아는 나는 항상 다음에 가르쳐 준다고 미뤘다.

1학년이 끝나가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성적이 구체적으로 서열화 될 쯤, 꽤 상위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에 맞서기보다는 자퇴하고 싶은 마음만 키우고 있었고, 그런 생각 속에서 내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싸이에 로그인을 하니 생일이 3일전인 일촌에 엄마 이름이 떠 있었다. 그래서 집에 가서 챙겨드리지도 못하고, 선물을 뒤늦게 챙겨드리기도 뭐해서 나는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을 선물로 드렸다. 돈이 500원 밖에 안 들어가면서도 엄마에겐 색다른 선물인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웬걸? 그 다음 날 엄마는 내게 쪽지로 이렇게 말했다.

“딸 선물 고마워 근데 엄마가 어떻게 하는 건 지 모르고 뭘 잘못 눌렀는지 선물이 삭제 돼 버렸네.”

지금 생각하면 별일이 아닌데도 나는 있는 짜증을 있는 대로 다 부렸다. 컴퓨터도 못하면서 왜 싸이는 해서 내 돈을 날리게 하느냐는 둥, 나도 잘 안 쓰는 도토리를 엄마 때문에 충전해서 쓰는 건데 그걸 삭제 해 버리면 어뜩하냐는 둥, 다음 날도 나는 여전히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 생신인데 싶어 직접 배경음악을 설정해 드릴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물어보았다. 그리고선 나는 엄마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엄마의 홈피를 꾸미려다 내가 선물한 음악이 삭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한참을 웃었다.

우리 엄마는 창이 닫힌 것이 선물이 삭제된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선물이 삭제되지도 않았는데 500원짜리 선물가지고 소심하게 군 느낌이 들어 엄마의 홈피를 예쁘게 꾸며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첩에도 들어가 보고 게시판에도 들어가 보고 방명록에도 들어가 보았다. 엄마와 일촌이 되고 처음으로 엄마의 홈피를 여기저기 둘러본 것이다. 어떻게 올리는 방법을 터득하셨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엄마의 미니홈피에는 70여개가 넘는 글이 있었고 엄마의 생각을 훔쳐보는 재미와 작은 공감들에 즐거워하던 나는 무심코 넘기려던 한 페이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 글의 제목은 바로 ‘母와 女’였다.

- 母와 女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편이라고 믿고
망설이고 벼르고 말했을 텐데…….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면서
정작 힘들어 기대려 할 때
나는 그 마음을 읽지 못했다.
선생님 친구들 성적…….
그 모든 것에 갈등하고 힘들어 하는 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랑한다고 말 만 되풀이 하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힘들어 하는 것을 모르다니…….
그 애가 아파서 눈물을 보이고 엄마가 안아만 주어도
말없이 그냥 안아만 주어도 된다고 해서야 그 애를 보다니…….
보듬어 주지 못했음을
종일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하루 종일 힘들어 한다.
나에 무디어 가는 감정 눈에 게으름 생각에 게으름…….
오늘 나는 아이와 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준비를 한다.
나 그 때 아주 먼 날에
혼자인 듯 갈등하고 외로워하고
많은 날 그리했으면서…….

이 글을 읽고 나는 엉엉 울었다. 옆에서 친구들이 왜 우냐고 물어 보았지만 차마 대답할 수 가 없었다. 평소에는 엄마의 사랑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증명할 수 도 없기에 마음 놓고 엄마에게 짜증내고 탓했지만, 엄마의 글 하나하나가 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 졌다.

2007년이 된 지금. 나는 정말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평범해서 아쉽기도 하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의 그 방황을 극복했다는 것이 내게는 소중했던 2006년 이었다. 그리고 그 방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안락했던 엄마와 친구들의 미니홈피가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내게는 따뜻하고 안락한 World(세상)였다. 엄마의 글들을 읽은 날 이후로 나는 엄마 몰래 엄마의 아이디로 로그인 하여 종종 엄마의 미니홈피를 둘러보곤 한다. 그리고 힘을 얻곤 한다. 엄마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