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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희망 일으켜준 인터넷이 효자"

[정보사회 新문화만들기-행복나눔]아들 간병하는 아버지

장웅조 기자  |  2009.05.07 12:10
[정보사회 新문화만들기-행복나눔]아들 간병하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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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일산병원에서 만난 이윤기씨(54)는 바쁜 사람이었다.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한군데에 집중돼 있었다.

뇌 손상을 입어 식사나 걷기 같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된 아들 이겨레군(19). 그의 '손과 발' 노릇을 하는 데 이씨는 온신경을 다 쏟고 있었다. 밥을 먹여주고, 뻣뻣이 굳어버린 손발을 펴주고, 그 뒤엔 화장실에 데려가 용변을 보게 하는 일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그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터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아이에게 심장마비가 왔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삶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버렸죠."

2007년 8월17일 여름 물놀이를 갔던 겨레군의 심장이 갑자기 멈췄다. 지병인 비후성심근증이 결국 일을 낸 것이다. 심폐소생술(CPR)에 걸린 시간은 무려 32분. 집 근처인 강릉의 한 병원으로 후송된 후 '식물인간'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고 의사들은 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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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그만두고 24시간 뒷바라지 2년째
 
"내 아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강릉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겼죠. 그 덕인지는 몰라도 결국 이렇게 살아났지요."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채 평생을 살아가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심장이 멈추며 혈액의 흐름도 멈췄고 그 결과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이 차단됐기 때문에 뇌손상이 왔다. 결국 19세인 겨레군은 실질적으로는 3~5세의 지능으로 생활하는 처지가 됐다. 혼자선 걸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몸을 가눌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누군가가 옆에서 24시간 돌봐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을 관뒀다.
 
"간병이라는 건 휴일이 없으니 한달이면 30일 내내 일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간병인에게 일당을 6만~7만원만 줘도 월마다 최소 200만원인데 여기에 치료비나 입원비 등이 포함되면 제가 감당할 만한 비용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씨는 다니던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아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간병하는 삶을 택했다. 살던 집은 팔았고 현재 병원에서 아들과 함께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비싼 치료비 때문이다.
 
사고가 난 뒤 2년간 아버지가 아들의 수족 역할을 하며 재활치료에 삶을 다 내놓은 덕인지 아들의 용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사고 직후에는 침대에 앉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제는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몸을 곧추세우고 느리게나마 걷게 됐다. 음식을 삼키지 못해 링거액에 의존하던 시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친한 사람들도 이제는 알아보기 시작했다. 체중도 2~3개월 만에 50㎏에서 60㎏으로 늘었다. 주치의는 "상당히 빠른 회복"이라고 말했고 이날 병원을 방문한 이씨의 친구 최상위씨(금융업)도 "몇달 전에 봤을 때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아버지가 그렇게 옆에 붙어서 고생한 덕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금은 하루하루 호전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아버지지만 예전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특히 식물인간 상태였던 사건 초기엔 더욱 그랬다. 이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처음 겨레가 사고를 당했을 때는 화가 났어요. 대체 내가 살면서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싶었죠.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기본적인 것들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잖아요. 군대가는 길을 배웅한다거나, 데리고 온 여자친구에게 밥을 사준다거나, 대학졸업식 같은 것들 말이죠."

◇해피빈 소개되자 네티즌 온정손길

그러나 아들과 24시간을 함께하는 고된 길을 가면서 그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아픔보다는 기쁨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한다. 간병생활 2년,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듯이 결코 쉽지 않은 생활이었을 텐데 무엇이 이 아버지로 하여금 이 같은 느낌을 받게 한 것일까. 이씨는 사고가 나기 전 아들에게 갖고 있던 '부채감'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사고가 난 뒤 아들에게 많이 미안했어요. 뭐랄까, 내가 먹고살기에만 너무 바빠서 아들에게 그동안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아내와 이혼한 뒤로는 내가 집을 비우면 아이들만 집을 지킨 것이, 내가 너무 '나쁜 아빠'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와서 보니 사고가 나기까지 17년간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사고 후 2년간 보낸 시간보다 더 적어요. 간병을 통해 아들을 더 잘 알게 된 거죠." 아버지는 "아이를 한번 더 낳아서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병원과 아버지의 목표는 겨레가 다른 이의 도움 없이도 일상생활을 혼자서 할 정도까지 치유되는 것이다. 사고 이전으로 회복되기는 어렵겠지만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면 그것으로 일단 만족하려 한다. 다만 유일한 걱정거리는 경제적 부담이다. 겨레가 일산병원에서 언어·물리·인지치료 3가지 재활치료를 받는데 치료비만 한달에 200만원 이상 들어간다. 지난 2년간 병원생활에 들어간 돈이 8000만원 이상 된다는 게 이씨의 계산이다.

직업이 없어 고정수입이 없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절실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나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금에 의존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좀더 많은 사람에게 사정을 알렸다. 이씨의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각계에서 온정의 손길이 쏟아졌다. 봉사단체 '하트-하트재단'이 겨레군의 사연을 네이버의 기부사이트 '해피빈'에 소개한 결과 총 494명이 모금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KBS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에 소개되면서 전화모금도 이어졌다.

어려운 시기에 이 같은 도움이 아버지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주변이나 사회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세상에 고마운 사람들이 이렇데 많다는 걸 모르고 살았어요"라고 말하는 이씨. 이제 1년만 더 치료하면 되는 상황까지 왔으니 여러분께 진 큰 빚을 두고두고 갚으며 살아갈 작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