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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수상작]엄지발가락 외계인

[초중고 글짓기&포스터 공모전]교육부총리상(인터넷)-고등부 대상

박해정 기자  |  2006.12.19 12:46
[초중고 글짓기&포스터 공모전]교육부총리상(인터넷)-고등부 대상
나는 지금 내 기억 속에 남는 한 친구를 소개하려한다. 평소에 말수도 적어 어울리지 못할 줄만 알았던 친구, 그러나 누구보다도 더 활기찬 모습으로 변한 친구. 지금부터 그 친구를 소개하겠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고등학교의 문턱을 넘어섰다. 자기 소개시간, 중학교 때의 동문들 외에는 모두가 낯선 교실에서 자꾸 갈라지려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교탁 앞에 섰다. 주체할 수 없는 이 가슴.

“저는 천안 동여자중학교에서 온 박해정입니다. 여러분들과 친하게 지내보고 싶습니다.”

고객 숙여서 인사한다는 것이 그만 교탁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애들이 교실이 울리도록 웃는다. 나도 같이 웃었다. 조금은 얼얼했지만 덕분에 분위기가 부드러워져 긴장하지 않고 내 소개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친구는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나 보다.

선생님의 입에서 그 친구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친구를 향했다.
“나는 백가은이라고해. 잘 부탁해.”

정말 많이 긴장했는지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도 저 앞에 나가서 목소리 많이 가다듬었는데……. 안쓰러운 눈길로 그 친구를 바라보았다. 자리로 돌아간 가은이는 책상위에 엎드렸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도 실은 아까 많이 긴장했는데. 괜찮아?”

친해지려고 말을 걸어도 손을 내밀어도 그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책만 읽고 있었다. 가은이와 친해지려면 오래 걸릴 것 같다.

다음날 아침조회. 담임선생님은 내게 학교 홈페이지에 부속되어있는 우리 반 홈페이지를 관리해 보기를 권하셨다. 자기소개시간에 충분히 자기를 소개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자기소개 게시판을 추가하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해보기로 했다.

그 속에선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 일을 맡게 된다면 인터넷에 있는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반 아이들의 얘기를 제일 먼저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명 한명씩 이해를 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홈페이지가 가장 많이 활성화 된 반을 뽑아 상금을 준다고 하는데 그게 다른 반이 아닌 우리 반이었으면 좋겠다. 꼭 상금이 아니어도 우리 반이 급우들 간의 친분이 가장 두터운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식을 들은 아이들의 눈길이 오가고 흐뭇한 표정이 교실 가득했다. 하지만 가은이도 거기에 동참할 지 의문이었다. 혹시나 애들이 꺼려져서 가입을 미루진 않을지……. 조심스레 가은이의 반응을 살폈지만 귀에 이어폰을 꼽고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어쩌면 저 친구는 내게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매일 나는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친구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 손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이제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가은이와 친해지기 위해 재미있는 얘기도 해 주고 먹을 것도 나눠줬지만 언제나 무표정이었다. 혹시 웃는 방법을 잊은 것은 아닐까.

며칠에 걸쳐 반 아이들이 자기소개 게시판에 자신을 소개했다.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태그를 이용해 예쁘게 꾸미기도 하는가 하면, 자신의 미니홈피 주소나 블로그 주소를 남기기도 하면서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가은이의 자기소개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가은이를 알고 있는 다른 반 친구에게서 정확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본래는 남들 못지않게 활달한 아이였는데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잃었다는 것이다. 꾸준한 재활 훈련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없어진 발가락 때문에 애들에게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점차 반 아이들과 멀어지면서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그로인해 소극적으로 변했다는데 그 아이가 다시 활달해 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음악시간. 선생님이 지목하는 사람이 나와서 '샹젤리제'를 부르기로 하였다. 선생님은 가은이를 지목했고 가은이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목소리도 작았다. 급기야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 반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힘을 주겠다는 듯이 따라서 부르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모두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가은이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노래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들어오면서 수줍게 웃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 날 저녁 홈페이지 관리를 위해 우리 반 홈페이지에 들어간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나는 엄지발가락 외계인이다.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엄지발가락을 잃었고 그로 인해 애들에게 놀림 받았다. 애들과 멀어지며 나는 사람을 대하기가 싫어졌다. 우리 반에 이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 내가 그 친구들을 멀리하니 그 애들도 나를 싫어 할 줄 알았다. 다른 애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친구들에게 눈치가 보여 차마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나를 싫어할 줄 알았던 그 친구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내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가장 먼저 따라 불러 준 애가 그 중 한명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애들이 하나 둘씩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덕분에 나는 확실히 애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젠 내가 한걸음씩 다가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얘들아, 내가 조금 주춤거리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래."

짧은 글이었지만 가슴에 와 닿았다. 다음 날, 그 게시물은 최고의 조회수와 수많은 댓글을 자랑했다. 그 중 한 친구의 댓글이 가장 눈에 띄었다.

'우리 반에 너를 싫어하는 애들은 없어. 우린 오히려 네가 고등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야. 이젠 두려워 하지마. 내가 너에게 손 내밀어줄게.'

가은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그 친구의 마음은 우리 반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가은이가 마지막 남은 자기소개글의 빈자리를 메웠다. 이로써 우리 반의 자기소개 게시판은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야영 갈 때, 누군가 그 아이에게 같이 다니자고 제안하였고, 우리 반은 단체 활동을 할 때에도 누구보다도 가은이를 먼저 챙겼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까지. 가은이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음악시간, 우리는 오늘 가창 수행평가를 본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하는데 연습할 때도 애 많이 먹었다. 내 차례가 지나고 가은이의 차례가 왔다.

당당히 걸어 나가는 가은이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활짝웃음이 피어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확연히 커진 목소리, 그 안에 숨겨진 가창력.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가은이가 저렇게 잘 불렀나?’ 혹은 ‘쟤 진짜 잘 부른다.’

가은이의 노래가 끝난 후 우리는 끊임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가은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모두들 가은이의 귀여운 웃음을 좋아했다.

일 년 동안 우리 반의 인터넷 게시판은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고 친구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애들 모두 흡족해 했다. 사진첩은 각종 행사마다 애들이 찍었던 사진들이 올라오고 우리 반 게시판에만 있는 자기소개 게시판은 더욱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방학식 아침 조회 날. "금상! 1학년 5반! 축하합니다."

우리 반은 당당히 홈페이지꾸미기에서 1위를 하였고 전교생 앞에서 상금과 상장을 수여받았다. 가은이와 함께 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모두가 방학을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에도 홈페이지에는 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각기 자신의 방학생활을 사진첩에, 게시판에 올렸고 덕분에 모두들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었다. 떨어져 있지만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가은이의 글이 한 편 올라왔다.

"이제 다음 주면 개학이다. 나는 요즘 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서 매일 달력만 쳐다본다. 내가 느끼기에도 중학교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 같아. 늘 학교가기 싫어서 방학을 기다렸었는데 지금은 그동안 어떻게 이 지루한 방학을 보냈는지 모르겠어. 하루 빨리 너희들을 보고 싶어. 내가 달라질 수 있도록 도와준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다. 모두들 고맙고 새 학기에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 너희들은 정말 멋진 친구들이야."

개학 후에도 우리반은 홈페이지를 통해 포토제닉, 베스트워스트 패션, 베스트칭찬을 뽑는 등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갔고 그 가운데 가은이가 있었다. 가은이는 여전히 웃는 모습이 귀엽고, 노래도 정말 잘하는 엄지발가락외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