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 新문화만들기]KT IT서포터즈 '실버교육'
"왔어?" "오늘 배우는 건 뭐야?"
지난 3일 오전 10시 경기 용인의 꽃메마을 4단지 관리사무소 2층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KT IT서포터즈의 '실버컴퓨터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매주 월·목·금 3일 동안 오전·오후 두세 차례씩 열리는 교육시간에는 매번 컴퓨터를 배우러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열정으로 강의실은 후끈 달아오른다.

◇"이래뵈도 수준급 수강생들"

17대의 PC 앞에 앉은 어르신들. 강의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자리는 이미 만석이다. 결국 한 PC에 2명씩 짝을 이뤄 앉아 강의 시작을 기다린다. 이날 선생님은 성태봉 KT서포터즈(과장). 꽃메마을 컴퓨터 수업은 강의선생님 1명과 도우미선생님 1~2명이 함께 강의를 진행한다. 수강생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마우스를 처음 잡는 분들부터 PC 조립·관리를 하는 수준에 도달한 분들까지 격차가 크기 때문에 도우미선생님이 꼭 필요하다.

"오늘은 커피사진과 바이올린사진을 자연스럽게 합성하고 글귀를 써넣을 거예요. 먼저 포토샵을 열고 사진을 열어보세요."

강의를 하는 성 과장의 목소리가 커진다. 이날 수업 강의는 '포토샵 심화반' 수업으로, 주제는 '합성'이다. 예상외로 수업수준이 높았다. 이미 대부분 수강생은 1년간 꾸준히 컴퓨터 강의를 들어온 터. 15명의 수강생을 사전에 신청받지만 신청을 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이날 처음 강의실을 찾은 수강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워 보이는 주제였지만 장기(?) 수강생들이 도우미를 자처하고 나섰다.
　
꽃메마을 정보기술(IT) 교육은 지난해 1월부터 진행됐다. 당초 2007년 4월 아파트 주민들이 중고 PC 5대로 주민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실시했지만 경험이 적고 지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던 중 KT IT서포터즈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강의가 시작됐다. 지난해 말에는 용인시에서 최신형 컴퓨터를 지원해 17대를 갖췄다.


IT서포터즈는 지난 1년간 한글, 파워포인트, 포토샵, 스위시, 블로그 운영 등의 강의를 초급부터 중상급까지 수준별로 진행했고 8명이던 수강생은 80여명으로 늘었다. 그중에는 PC 조립을 직접 하는 수준에 이른 어르신도 3~4분이고 중상급 강의를 배우는 동시에 초급반 강의를 직접 하는 어르신도 2명이 생겼다. 기초반 강의를 맡은 이정호 할아버지(74)와 문락빈 할아버지(72)다. 단순히 도움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다른 나눔을 실천하는 것.
　
문 할아버지는 "이런 활동을 하면서 늙지 않는 것같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나라의 많은 노인이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수요가 많을 텐데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문 할아버지는 어르신들의 참여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꽃메마을 컴퓨터 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손주 돌잔치 동영상' 도전하는 어르신들


어르신들은 컴퓨터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커졌단다. 지난해부터 강의를 맡아온 성 과장은 손주의 돌잔치 영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할머니 수강생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스위시맥스 강좌를 들은 이 어르신은 손주의 돌잔치에 사용할 동영상을 만들겠다고 가족들에게 자신있게 나섰다가 돌잔치 전날 막상 원하는 만큼 멋진 동영상 만들기가 쉽지 않자 IT서포터즈의 집까지 찾아와 도움을 받았다. 비록 실패했지만 컴퓨터 교육을 통해 도전할 수 있는 꿈이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컴퓨터 강의 수강생들은 지난해 11월 포토샵 수업을 통해 익힌 기술로 작품을 만들어 작품제를 열기도 했다. 직접 찍은 사진을 그동안 배운 포토샵 기술로 수정해서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작품전시회도 진행한 것이다. 중국 가족여행 사진을 멋진 배경과 배치한 배길문 할아버지의 '중국여행' 작품, 노년부부의 모습에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놓은 글귀를 배치한 김병기 할아버지의 '동반자' 등의 작품은 여전히 강의실이 있는 관리사무실 복도에 전시돼 있다.

성 과장은 "맨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 접근이 어려워서 망설이시던 분들도 밤새워 블로그를 관리하고 동영상을 만들곤 한다"며 "코믹한 손수제작물(UCC)을 만들어 메일로 보내주시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동영상메일을 하루에 16개나 만들어 보내는 어르신이 있는 등 성 과장의 메일함은 항상 여유가 없다고 한다.

이날도 1시간반여의 강의가 끝나고 포토샵 작품을 완성한 어르신들에게 성 과장은 마지막 미션을 내렸다. 각자의 블로그에 이날 만든 작품을 올리기였다. 20명의 어르신은 모두 블로그를 운영한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블로그에 작품을 올리는 모습을 슬쩍 보니 이미 꽤 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어르신들은 자신만의 블로그를 꾸미고 결과물을 눈으로 보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세대간 벽 허무는 기회"

강의실 뒤쪽 벽에는 큼직한 컴퓨터 자판 배열 그림이 그려져 있다. 'Ctrl은 컨트롤키' 'Shift는 쉬프트키' 등 기능키 이름들도 친절하게 적혀있다. IT서포터즈들은 컴퓨터를 처음 접해본 노인들도 있는 만큼 맞춤형 강의를 진행한다. 블로그, 포토샵, 인터넷 등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은 프로그램 위주로 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판 맨 아래 좌측 하단 컨트롤키를 집게로 누른 상태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렀다 떼면 실선이 깜빡이면서 네온사인이 켜지죠? 그게 선택됐다는 뜻이에요." 하나하나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명하는 강사의 노력이 느껴졌다. 성 과장은 지난 1년간 강의를 하면서 노인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법을 배운 것같다고 말했다.
　
강사뿐 아니라 강의에 참여한 젊은 층들도 함께 수업을 들으며 미처 몰랐던 노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이날 강의에도 젊은층이 일부 참여했다.
　
이처럼 실버IT 교육은 정보 소외계층으로 전락하기 쉬운 노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세대간 이해도 넓혀주는 방안이 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501만6000명으로 총인구의 10.3%를 차지한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노인인구의 증가 추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세대간 교류와 이해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포토샵 강의를 한다는 소식에 강의실을 처음 찾았다는 20대 여성은 함께 앉은 할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강의를 따라가고 있었다. "제가 가르쳐드려야 하는데 되레 도움을 받고 있네요. 완전히 굴욕이에요. 할머니, 다음번에도 제 옆에 앉으셔야 해요." 밝게 웃는 그들에게 세대의 벽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