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클린 2021] ⑤ -1 청년·비장애인 '맞춤형' 키오스크의 그림자
AI(인공지능)는 인간의 따뜻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AI는 그러나 최근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부작용 등 각종 논란에 휩싸여있다. AI 뿐 아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로봇, 생명과학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올해 U클린 캠페인은 '사람 중심의 지능정보기술'(Tech For People)을 주제로 새로운 기술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윤리적 문제와 해법을 제시한다.
#. "딸, 엄마 이제 끝났나 봐." 집 앞 패스트푸드점에 햄버거를 사러 다녀온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매장 키오스크 앞에서 20분 동안 헤매다 그냥 빈손으로 돌아섰다는 하소연이다. 매장 직원들도 바빠 보여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했다는 엄마.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며 끝내 통화 중 울음을 터트렸다.

올해 3월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이 글은 수만건 이상 공유됐다.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사회 전 분야에 비대면 디지털 신기술 보급과 확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취약 계층이 느끼는 서러움을 잘 표현해주는 사례다. 스마트폰으로 옷을 사고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물론 살 집까지 찾는 시대. 삶의 기본인 '의식주'가 디지털에 점차 귀속되는 셈인데, 자연스럽게 디지털 전환에 뒤처지면 삶의 질이 나빠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코로나19 판데믹(대유행) 이후 무인 키오스크를 도입한 점포들이 급증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한 식당은 물론 카페와 편의점, 극장, 대형마트 등까지 속속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조작 방법과 화면 구성과 낯선 디지털 용어는 노년층과 장애인 등 정보 취약 계층은 물론 비교적 디지털 적응도가 높은 중년층에게도 그다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인간을 돕는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키오스크 써본 노년층 "어려운데 눈치까지 보여"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7월 고용 현황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28만명으로 작년 7월 대비 8만3000명이 감소한 반면,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는 430만명으로 오히려 11만2000명 늘어났다. 코로나19로 경영여건이 악화돼 종업원을 줄인 영향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키오스크 도입이 늘며 '1인 또는 무인' 영업이 쉬워진 영향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반면 소비자들의 적응도는 키오스크 도입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소비자원은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없는 70세 이상 고령 이용자 5명을 대상으로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이용 모습을 관찰했는데, 대상자 5명 모두 주문하지 못했다. 복잡한 화면 구성과 영문 메뉴명이 낯설었고, 버거·세트·디저트 등 메뉴 분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한국소비자원이 2019년 비대면 거래를 경험한 65세 이상 고령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이중 키오스크를 이용해 본 고령소비자는 불편한 점(중복응답)으로 '복잡한 단계'(51.4%),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려움'(51.0%), '그림·글씨가 잘 안 보임'(44.1%) 등을 꼽았다. 특히 '뒷사람 눈치가 보인다'는 응답률이 절반(49.0%)에 가까웠던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용상 불편함도 있지만,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심리적 충격이 이들을 더욱 괴롭히고 있다는 전언이다.

키오스크도 비장애인 맞춤…장애인은 '2배' 어렵다디지털 정보격차는 고령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절대 다수의 키오스크가 장애인에게는 닿기 힘든 문턱이다. 예컨대 휠체어 이용자는 비장애인 맞춤 높이로 키오스크가 고정돼 화면을 제대로 읽기조차 어렵다. 시각 또는 청각 장애인에게는 아예 '무용지물'이다. 터치스크린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나 키오스크에 이어폰 단자가 제공되지 않아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9년 6월 서울·인천·경기 권역에 설치된 키오스크 800대를 대상으로 장애인 등 정보취약계층의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이 기기들의 접근성 수준은 평균 59.8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일반 국민의 평균 접근성(100점)을 기준으로 삼은 수치로, 다시 말해 장애인 등 정보취약계층은 키오스크 이용을 2배 가까이 어렵게 느낀다고 보면 된다.
'더 배우라' 다그치기보다 '접근 쉬운' 키오스크 만들어야코로나19로 다소 빨라지긴 했으나 키오스크 도입 등 비대면 디지털 혁신은 이미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보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역량 제고와 함께 누구에게나 접근이 쉬운 키오스크 개발 등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이를 독려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과 정부의 예산지원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키오스크의 경우 △직관적인 구조 △단순한 기기 배치 △음성 지원 △큰 글씨 등 비대면 환경에서 연령·성별·국적·장애유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개발·확산해야 한다.

정부의 디지털 격차 해소에 대한 관심과 개선 의지가 뚜렷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디지털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정보취약계층 눈높이에 맞는 키오스크 사용을 권장하는 정책 시행에 나섰다.

지난 6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능정보화 기본법 고시 개정령안에 따라 앞으로 동사무소 등 국가기관에서는 키오스크를 포함한 지능정보제품을 구매할 때는 정보접근성이 보장된 제품을 우선 구매해야 한다. 다만 이는 공공 부문에 제한된 조치에 불과하다.

무인정보단말기 설치·운영 시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의무화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도 지난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유예 기간 등을 고려하면 실제 민간에서 개선된 키오스크가 보편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