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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수상작]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문자메시지
[초중고 글짓기&포스터 공모전]정통부장관상(휴대폰 부문)-중등부 대상
조경진 기자 | 2006.12.19 12:30"요즘에는 핸드폰인지 뭔지도 싸게 살 수 있다던데…"
부모님의 일이 모두 끝나서 한가롭던 저녁, 가족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할머니가 마치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말씀 하셨다. 휴대폰을 유달리 싫어하시는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휴대폰이 있었고, 할머니만 휴대폰이 없으셨지만 할머니께서 휴대폰을 가지고 싶어 하신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할머니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걸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이상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저 할머니께서 휴대폰에 작은 관심이 생기셨나보다 느꼈다. 어쩐지 나는 할머니에게도 휴대폰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여기 엄마가 요 며칠사이에 그렇게 바라던 핸드폰"
어느 날, 엄마가 할머니께 휴대폰을 내미시며 말씀하셨다.
"얘는, 내가 언제 그렇게 찾았다고 그러니?"
할머니께서는 말씀은 이렇게 하셨지만 싫진 않으신 듯 했다. 아니, 좋아하고 계셨다. 엄마와 같은 휴대폰이었는데, 특별히 기능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셨나보다.
우리 할머니는 70대 중반이시다.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시며 살아오셨다고 한다. 게다가 예전부터 서울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6·25 전쟁도 직접 겪으면서 고생하신 분이다. 최근에는 많이 편찮으시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멋도 내시고, 나를 엄마보다도 더 잘 챙겨주시면서 가끔 우스개 소리도 잘 해주시는 신세대 할머니이다.
“이야, 할머니는 좋으시겠네. 아! 이게 충전기에요... 핸드폰은 여기다가 꽂아놓으면 되는 거구요.”
그 날 저녁, 나는 그렇게 지나가는 말로 할머니께 충전기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말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때 내 말을 꽤나 주의 깊게 들으셨나보다. 그 이후로 휴대폰이 충전기에 들어가 있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이미 다 충전된 할머니의 휴대폰을 빼고 내 휴대폰을 끼우려고만 하면 내 휴대폰은 내 충전기에 충전하라며 화를 내셨다. 나는 얼마나 좋으면 저러실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눠 쓰면 좀 어떠나 하는 생각 때문에 휴대폰 사용법을 알려드려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할머니도 내게 휴대폰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 채 한참이 흘렀다.
날 부르시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할머니께서는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계셨다. 전화는 어떻게 받는 거냐고 나에게 물으시기에 그냥 폴더를 여시면 되지 않냐고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휴대폰에 관해 처음 물으시는 건데...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의 휴대폰은 전화를 받으려면 그냥 폴더를 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폴더를 열고 통화버튼을 눌러야 했던 것이다.
나는 휴대폰 받는 방법을 할머니가 사용하기 편하시도록 바꾸어 드리고 집전화로 할머니 휴대폰에 확인 전화까지 걸어드렸다. 잠시 동안 전화벨이 울리고 할머니는 얼른 휴대폰을 집어 전화를 받으셨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시는 목소리가 매우 밝았고, 할머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내색은 별로 하지 않으셨지만 내심 좋아하시는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 후에도 휴대폰 사용법에 관해 할머니께서는 자잘한 것들을 물어오셨고 나는 잘 대답해 드리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본 할머니가 나를 부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게 넌지시 물으셨다. 문자는 어떻게 보내는 거냐고. 뭐 물론, 단순히 할머니께 알려드리면 되는 것이겠지만 문자는, 내가 언젠가는 할머니께서 내게 물어보신다면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할머니 휴대폰의 문자판은 내 것과 달라서 나조차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가며 할머니께 문자판 보는 법, 문자 보내는 법 등을 알려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할머니에게 내가 얼마나 괘씸하게 보였을지 상상이 가지만, 할머니는 내가 그걸 가르쳐 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하셨다.
“아, 할머니! 미음(ㅁ)을 두 번 눌러야 시옷(ㅅ)이 된다고요!”
나에게도 어려운 그 휴대폰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게 할머니에게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은 채 할머니가 그것도 못한다며 윽박지르고 신경질까지 부렸다.
아무리 그렇게 버릇없게 굴어도 할머니께서는 무슨 생각이라도 있으신지 그것을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나는 그걸, 그 작은 걸 가르쳐 드리는 것이면서도 생색을 내고 마치 내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고 말았고 나의 신경질은 점점 더 수준이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직 다 배우시지도 못한 할머니께 이제 그만하자고 말씀드렸다. 더 이상은 시간이 없다는 나의 핑계였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못마땅하면서도, 귀찮다는 나의 짜증에 어쩔 수 없이 나의 말에 동의하셨다. 나는 그 후, 가끔가다가 홀로 휴대폰의 문자판을 두드리고 계시는 할머니의 쓸쓸한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마다 내 마음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했지만 나는 그런 아픔을 무시하고 더불어 할머니의 그런 모습도 못 본 척 했다.
이러한 나의 행동을 반성하게 해 준 어느 날이었다. 학원에 있던 나는 평소보다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실 할머니에게 연락해주는 걸 깜빡 잊은 채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내 휴대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났다.
휴대폰을 꺼놓는 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나를 쳐다봤고, 선생님께서는 누구의 휴대폰이냐고 물으셨다. 생각지 못한 문자메세지에 당황한 나는 수업이 끝나고서야 메세지를 확인했다. 대체 나를 그렇게 당황시킨 문자 메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게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문자함을 열어보았는데,
‘경진ㄴ아 어디ㅣ니 일찍 들어와ㅏ ㄱ다릴꺼ㅣ’
라는 문자메세지의 내용. 발신자는 할머니의 휴대폰 번호. 순간적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 할머니에 대한 죄송스러움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문자 메세지를 보내실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것보다 나는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조차 깜빡 잊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나의 도움이 없이도 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맞춤법이 틀리고, 오타가 잔뜩 있는 문자 메세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게 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날 걱정하며 마중 나오신 할머니를 꽉 안아드렸다. 나는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말하려는데 눈물이 나왔다. 할머니께서는 왜 우냐면서 나를 토닥여 주셨다. 나는 바보처럼 할머니에게 안긴 채 끅끅, 소리를 내며 울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 할머니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메세지를 보내는 방법을 다시 알려드렸다. 예전보다 훨씬 쉽고, 차근차근히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할머니께서는 달라진 내 모습에도 기쁘셨겠지만, 배운다는 것 자체로 좋으셨는지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걸 보니 나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어쩐지 할머니와 ‘새로운 것’은 관계가 없다고만 생각해왔다. 할머니에게는 옛 것, 옛날의 방식, 옛날의 습관들만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은근히 무시했던 건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나에게 보내오신 오타 투성이의 문자 메세지.
한 글자 한 글자 느릿느릿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헤맨 후 에야 전송 버튼을 눌렀을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머니가 내게 보낸 메세지는 나에게 이 세상 그 어떤 편지보다도 소중하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는 바람이 차가워졌으니 골목길에 나와 계시지 말라는 문제 메세지를 할머니에게 보내봐야겠다. 그러면, 할머니가 답장을 해주실까. 할머니가 보내오실 문자 메세지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