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u클린 공모전]글짓기/고등부 부문 대상- 박문여자고등학교 2학년 이현영
"제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일상 생활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에요. 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저를 달래주던 제 글이 SNS를 통해 타인에게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저도 성장했어요."

머니투데이 주최로 열린 '제11회 u클린 초중고 글짓기 포스터 공모전'에서 고등부 글짓기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현영양(박문여고 2학년)은 SNS를 하면서 겪은 긍정적인 변화를 담은 글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양은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치료하는 의미로 글을 썼고, 이번 공모전에 제출한 글도 마찬가지였는데 상을 받게 됐다"며 "그만큼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셨다는 의미라서 감동받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작가를 꿈꾸는 이양은 주로 에세이, 심리학. 철학 분야 서적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접하면서, 우울했던 분위기의 글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특히 SNS를 통해 자신의 글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자신감도 붙었다고 전했다.

"SNS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글로 상대를 위로하는 법도 깨달아가고 있어요. 그 위로가 다시 또 저에게 돌아오고 제 스스로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베풀었던 보은이 다시 제게 돌아오는거죠."

이번 글의 제목도 '보은기(報恩記)'다. 이양은 앞으로도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에게 SNS의 좋은 활용법으로 이 양은 "지나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SNS에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친구로서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은기 (報恩記) 빛을 보려면 하나의 세상을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의 저자인 헤르만 헤세의 명언이다. 나의 새로운 세상은, 내가 그토록 기피했던 하나의 SNS계정으로부터 시작한다. 본래 성장이라는 것이 그렇다. 각기 다른 알을 깨기 위해 부리가 아릴 때까지 껍질을 두드려야 한다. 하지만 나를 태반처럼 감싼 알의 두께는 아버지의 굳은살 박힌 손가락만큼이나 두툼했고, 그에 비해 나의 부리는 너무나 어렸다. 항상 금이 가는 것은 내 쪽이었다. 괴롭고, 또 외로웠다. 2014년도, 점차 심화되어버린 범불안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선택했던 휴학은 악순환만을 거듭했다. 낮은 자존감과는 달리 나를 괴롭히는 것들의 키는 너무나 크고 거대했다. 담쟁이 넝쿨마냥 올라서려 치면 벽은 항상 몸피를 키워댔다. 가족들 말곤 아무도 나를 돌봐주는 이 없었다. 나조차 나를 방치했다. 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벽을 더욱 두텁게 쌓는다. 알 속의 나는 작아졌다. 나는 아직 어린데, 자존감의 부재는 책을 채운 낱장처럼 늘어나기만 했다. 마치 우물 속에 갇힌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간간히 내려오는 낡은 두레박엔 위로가 잔뜩 쌓여있었다. 가족들의 사랑도 담겨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비쩍 마른 배를 채우며 항상 우물 벽을 짚고 올라가려 애썼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내 방법은 세상의 뜻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흡수하고 방출하며 그것으로 인해 순환한다. 구름에서 비가 내리면 햇빛이 다시 땅 위 고인 물에서 구름을 얻듯, 관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흡수만 해선 살 수가 없었다. 가족들과 주위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응원과 위로. 이 모든 것들이 더해질수록 나는 더더욱 시들어갔다. 나는 이들처럼 누군가를 위로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응원해주는 것에 영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든 우물 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대인공포증, 집 밖을 두려워하던 다른 방법을 모색해, 우물 밖까지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낯선 디자인의 SNS, 페이스북과 연결된 인스타그램에 나는 더듬더듬 글을 써내려갔다. 내 안에 먼지처럼 쌓인 우울을 털어내기 위해 매일 글을 올렸다. 나를 표현하는 것, 그것은 나에게 오묘한 카타르시스를 부여했다. 배워 본적 없는 미숙한 글에도 팔로워들이 생겼다. 나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 타인의 글을 읽으며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성숙해진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보름달이 밝았던 그 밤은 여느 때처럼 글을 쓰던 새벽이었다. 별안간 잠잠하던 핸드폰 상단에 알림이 뜨더니, 곧 아침안개마냥 사라진다. 내게 다이렉트가 온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로 유명한 유저였다. 나는 그녀에게서 처음 온 다이렉트에 잔뜩 설레어 하며 창을 열었다. 아이디는 프롬유어타임. 박애주의적인 성향이 뚝뚝 묻어나는 아이디였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튼튼한 두레박을 내려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나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이기도 했다. 팔로워가 많아 나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지켜보고 가늠해왔던 것 같았다. 내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동시에 내가 나의 우울을 부정하며 발버둥치는 것 또한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다정히도 내 이름을 부른다. 현영양. 어감마저 사랑스러운 작태의 문장이 나의 우물을 두드렸다. 그녀는 나를 꼭 반딧불이처럼 묘사했다. 개체 수가 줄어들어 이젠 그 이름도 반가운 반딧불이. 어둠이 있어야만 진면목을 발휘하는 곤충. 그녀는 나를 볕드는 곳으로 인도해주고 싶었지만, 곧 그 생각을 고쳤다고 했다. 어두워서 더욱 빛나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라고.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말라고. 나는 그 메시지에 대답하지 못하고 문장만 한참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십 여분을 보냈을까, 핸드폰 액정이 꺼진 다음에서야 나는 내 안에 잠겨있는 우울의 이목구비를 만질 수 있었다. 낯선 감정의 얼굴이었다. 어둠 사이로 피어난 달은 아름답다. 그 어떠한 행성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색을 뽐낸다.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받고 싶은 이들을 위해 매일매일 그 동그란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빛에, 달의 외로움과 혹독한 추위는 감춰지고 만다. 내가 쓴 글들이 그러했다. 애써 감추고 부정하려는 우울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날 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달을 유심히 살폈다. 그 뜨겁도록 다감하던 달은 표면이 상처 투성이였다. 나도 그랬을까. 달의 상처를 본 오늘처럼, 내가 남들을 위로하려 들기에 앞서 내가 나의 상처를 위로해주어야 마땅한 게 아닐까. 아마도 그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우울을 인정한 것이. 여태껏 우울을 미워해왔던 나는 조금 달라졌다. 부러 어둠을 지닌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다. 제 각각의 사연, 애매한 해시태그들. 그 사이로 나와 가장 닮은 어둠을 찾아 댓글을 달았다. 다들 울지 말라며, 힘내라며 어둠을 위로할 때 나는 다른 위로를 건넸다. [힘들면 울어도 돼요.] 내가 한 말은 그 뿐이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무엇을 권유하지도, 달래주지도 않았다. 그리곤 자판을 열어 그들을 향한 글을 올렸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감정은 흘러넘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눈물과 슬픔이라는 단어가 있는 이상 우리는 충분히 서러워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세상은 가혹으로 점철되어있고, 인생사는 누구든지 굴곡이 있는 법이다. 가끔은 손에 쥐어진 것들, 어깨에 짊어진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며 눈물로 떨궈야 한다. 그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좌절과 절망, 그리고 포기가 가장 나약한 것이지. 우리는 하늘도 울어야 가뭄이 오지 않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에 달린 댓글과 다이렉트들은 유익했다. 덕분에 시원하게 울었다는 댓글,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다이렉트. 놀랍게도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 중에는 두 딸을 둔 한 가정의 아버지도 있었다. 그로 인해 나는 새삼 깨달았다. 눈물을 참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다는 것을.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달이었다는 것을. 나는 위로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나만의 방법을 못 찾았던 것뿐이라는 것을. 이 모든 과정의 기원은 한통의 다이렉트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내가 나의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선 가장 큰 힘과 감정을 소모해야 했다. 마치 담즙을 삼키듯 썼고, 무엇보다 그 트라우마와 직면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단단한 트라우마를 쪼아댔다. 부리가 부숴지더라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하나가 부숴져야 끝이 난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몸부림이었다. 그 뒤로 나는 단 몇 개월의 시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왔다. 드디어 내 안에 차곡차곡 적립되어왔던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위사람들의 위로와 사랑들을 딛고 우물 밖의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보다 더 황홀한 경험은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항우울제를 거듭하며 9년을 버틴 소녀가, 드디어 우물 밖을 탈출한 순간이었다. 그것도 하나의 도전이었던 SNS를 계기로 말이다. 나는 그 후 4주라는 시간 동안 여전히 가족들이 준 은혜를 타인에게 베풀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현재진행 중으로, 나는 앞으로도 내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위로와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언행과 미소가 밝아져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타인을 위로함으로써 나의 자존감은 높아졌고, 존재에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평생 그림자처럼 지니고 다닐 줄만 알았던 불안장애는 점차 잦아들어가고, 반비례하게 인품은 깊어졌다. 밖에 나가선 할 수 없었던 경험들, 그리고 사람들. 결국 나는 나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베풀었던 보은이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