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엿보기 등 원격관리 프로그램 수백종 공공연히 유통
대학생 김모군(20세)은 어느날 PC방에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PC방에서 여자친구와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대화를 주고 받던 와중에 누군가 원격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들의 대화내용을 엿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

김군은 "멀리서 키득거리며 웃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가보니 자신들의 대화내용이 그대로 화면에 떠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고 토로했다.

삼성의 97년 대선자금 지원 의혹이 담긴 '불법 도청 X파일'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사이버 공간에서도 타인의 대화를 엿듣는 '감청' 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공간에서의 도청은 특수 목적(?)의 조직이 전문 장비를 구매해 특정 장소에 설치해야하는 부담감이 있는 반면, 사이버 도청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포되는 유료 혹은 무료 프로그램을 이용해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데이터 가로채는 스누핑 심각

박모군(21)은 대학교 기숙사에서 다른 방 친구가 방금 전 자신의 MSN 메신저 대화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봤더니 그 친구가 'SnoopSXXX'란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메신저 대화내용을 엿듣고 있었던 것.

이 프로그램은 네트워크상에서 오가는 트래픽을 분석해주는 용도로 개발된 공개용 스누핑(Snooping) 툴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네트워크에서 전송되는 남의 데이터 내용까지도 훔쳐볼 수 있었던 것.

박군은 "더 이상 불안해서 기숙사는 물론 MSN은 물론이고 메일 계정 로그인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안해했다.

이같이 특정 네트워크상에서 오가는 남의 데이터를 엿보기 위한 스누핑 툴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버젓이 공개 SW로 무료로 유포되고 있다.

이중 사용자 PC에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깔지 않아도 감청이 가능한 고급형 프로그램의 경우엔 미화 100달러 수준에서 판매되고 있다.

기업들이 암암리에 사용하고 있는 일부 원격관리 프로그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IT 자산 중앙 관리나 고객들의 원격 PC 관리 목적과는 달리 사내 직원들의 작업내역이나 이메일 감시 용도로 종종 악용될 수 있다는 게 보안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원격관리 프로그램은 마치 자신의 PC 앞에 앉아 직접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 정보는 물론 PC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엿볼 수 있어 더욱 심각하다는 게 문제다.

보안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수백여종의 원격관리 프로그램 중 상당수는 기업들이 IT 자산관리나 정보유출 방지를 위한 당초 용도로 활용하는 경우지만, 이 중에 일부는 사용자들의 동의없이 설치돼 해당 PC의 사용내역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실제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 프로그램 허용범외 논의 시급

이들 프로그램의 경우, 당초 네트워크 관리나 기업 정보유출 방지 용도로 개발된 공개 혹은 상용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보안 조치가 쉽지 않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사실 스누핑 툴 같은 경우, 방화벽 등 보안제품에도 탑재되는 기본적인 기능인데다 개발목적 자체가 악의적이라기보다는 일부 프로그램 이용자들이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게 문제"라며 "이 때문에 아직까지 이들 프로그램들에 대해 악성코드로 분류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보안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공공장소에서 PC를 사용할 경우, 될 수 있는 한 금융거래나 민감한 사생활 정보 등을 노출시키지 말고, 이를 활용할 경우, 암호화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지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원격관리 프로그램과 관련, 기업들이 관련 프로그램 사용 범위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지의 여부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